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한 사람이 320만 명을 넘었습니다. 65세 이상 인구의 약 24%가 참여했습니다. 제도가 시작된 2018년을 생각하면 놀라운 속도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어머니가 분명히 써 두셨는데, 결국 인공호흡기를 달았어요.”
서류가 잘못된 게 아닙니다. 이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가족이 몰랐기 때문입니다.
서류를 썼다고 바로 효력이 생기는 게 아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나중에 임종과정에 들어가면 연명의료를 하지 말아 달라”고 미리 밝혀 두는 문서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임종과정’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서류는 환자가 임종과정에 있다고 판단된 다음에야 효력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가족이 하는 게 아니라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가 함께 내립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생깁니다. 중환자실에 계시지만 아직 임종과정 판정 기준에 이르지 않았다면, 의향서가 있어도 연명의료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행할 수 있는 병원이 따로 있다
또 하나. 연명의료 중단을 실제로 이행하려면 그 의료기관에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돼 있어야 합니다.
전국의 모든 병원에 있는 게 아닙니다. 응급 상황에서 실려 간 병원에 위원회가 없으면, 그 병원에서는 절차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중단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다르다
가족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는 부분입니다.
연명의료 중단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같은 것을 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것입니다.
반면 물과 영양 공급, 산소 공급, 통증을 줄이는 처치는 중단할 수 없습니다. 법이 그렇게 정해 두었습니다. “괶겨 보내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건 제도상 불가능합니다.
가장 흔한 실패 — 가족이 모른다
그리고 실무에서 제일 자주 보는 문제는 훨씬 단순합니다.
본인은 써 두었는데, 자녀가 그 사실을 모릅니다.
의향서는 국가 시스템에 등록되기 때문에 의료진이 조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응급실에서 가족이 “무조건 살려 주세요”라고 하고 있는데, 아무도 조회를 요청하지 않으면 그대로 흘러갑니다.
서류는 캐비닛이 아니라 가족의 머릿속에 있어야 합니다.
엔딩플래너의 관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이 서류의 진짜 가치는 법적 효력보다 가족이 그 대화를 한 번 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부모님이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자녀가 직접 들어 두면, 나중에 응급실에서 형제끼리 싸우지 않습니다. 서류만 있고 대화가 없으면 그 서류는 자주 무력해집니다. 반대로 대화가 있었다면 서류가 조금 부족해도 가족은 같은 방향을 봅니다.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세부 요건은 개정될 수 있습니다. 실제 결정을 앞두고 계신다면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또는 해당 의료기관에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할 수 있는 것
- 부모님이 의향서를 쓰셨는지 확인하세요. 본인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lst.go.kr)에서 등록 여부를 조회할 수 있습니다.
- 아직이라면 등록기관 위치를 찾아 알려 드리세요. 보건소, 일부 병원, 건강보험공단 지사 등에서 상담 후 작성합니다. 대리 작성은 안 되고 본인이 직접 가야 합니다.
- 형제 전원에게 그 사실을 공유하세요. 한 사람만 알고 있으면 응급실에서 무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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