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가 끝나고 자녀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뭔지 아십니까.
찾는 일입니다. 통장이 어디 있는지, 보험은 어디 들었는지, 그 지인 연락처가 뭔지, 도장은 어디 듔는지. 슬퍼할 시간에 서랍을 뒤집니다.
그래서 저는 엔딩노트를 권합니다. 거창한 유언장이 아니라, 노트 한 권입니다. 법적 효력은 없지만 남은 사람에게는 유언장보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노트 한 권에 들어갈 12가지
돈과 서류
- 금융 — 은행·증권 계좌 목록(잔액 말고 어느 은행인지만), 자동이체 목록
- 보험 — 가입한 보험사와 증권번호, 담당 설계사 연락처
- 부동산과 자동차 — 등기 서류 보관 위치, 명의
- 빚 — 있으면 반드시. 모르고 상속받으면 빚도 같이 옵니다. 상속 포기·한정승인은 기한이 있습니다
- 연금 — 국민연금, 개인연금, 주택연금 여부
의료와 돌봄
- 지병과 복용약 — 병원, 진료과, 담당 의사, 약 목록
- 연명의료에 대한 내 생각 —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여부와, 서류에 안 담기는 내 마음
- 돌봄이 필요해지면 — 집에 있고 싶은지, 시설이 나은지, 비용은 어디서 쓸지
이별과 그 이후
- 장례 방식 — 규모, 종교 의식 여부, 상조 가입 여부와 계약서 위치
- 모실 곳 — 화장 후 봉안·자연장·산골 중 무엇인지
- 알릴 사람 — 부고를 꼭 받아야 할 사람 명단. 자녀가 모르는 관계가 반드시 있습니다
- 디지털 — 휴대폰 잠금 해제 방법, 주요 계정, 사진이 어디 저장돼 있는지
이 노트가 실제로 하는 일
이 열두 가지를 적는 데 걸리는 시간은 두 시간이 안 됩니다.
그런데 이게 없으면 남은 가족은 몇 달을 씁니다. 금융감독원 상속인 조회 서비스로 계좌를 찾고, 보험을 찾고, 부동산을 확인합니다. 그사이 상속 포기 기한 같은 것들이 지나가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11번 항목이 없으면 부모님의 오랜 친구가 부고를 못 받습니다. 그건 나중에도 되돌릴 수 없습니다.
엔딩플래너의 관점
엔딩노트를 쓰자고 하면 대개 “재수 없다”는 말이 돌아옵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께 쓰시라고 하기 전에 자녀가 먼저 쓰라고 말합니다. 내 것을 써 보면 이게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 아니라 남은 사람을 배려하는 일이라는 게 몸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그 상태로 부모님께 보여 드리면 대화가 훨씬 쉽게 열립니다. “아버지도 쓰세요”가 아니라 “제가 이거 써 봤는데요”로 시작하는 겁니다.
오늘 할 수 있는 것
- 노트 한 권을 사거나 문서 파일 하나를 만들고, 위 12개를 제목만 적어 두세요. 오늘은 제목만으로 충분합니다.
- 12개 중 가장 쉬운 것 하나만 채우세요. 보통 6번(복용약)이 제일 쉽습니다.
- 노트를 어디 둘지 정하고, 그 위치를 최소 한 사람에게 알리세요. 아무도 모르는 엔딩노트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 글은 준비 중인 책 『엔딩플래너』의 초고입니다. 새 글과 출간 소식을 먼저 받아보시려면 이메일을 남겨 주세요. 주 2회, 화·금 아침.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