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재병

기대수명 83.7세, 건강수명 72.5세 — 그 사이 11년

오래 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은 다른 목표입니다. 통계가 보여 주는 10년의 간극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숫자 두 개만 나란히 놓으면 노후 설계의 핵심이 보입니다.

기대수명 83.7세 (통계청, 2024년)
건강수명 72.5세 (통계청, 2021년)

기준 연도가 달라 단순 뺄셈은 무리지만, 방향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10년 이상을 병이나 장애를 안고 삽니다.

우리가 세우는 목표는 대체로 틀렸다

건강검진 결과를 받으면 우리는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보험 설계도, 연금 설계도 다 수명을 기준으로 짜여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삶의 질을 결정하는 건 기대수명이 아니라 건강수명 이후의 10년을 어떻게 보내느냐입니다.

같은 83세라도 두 사람의 인생은 완전히 다릅니다. 한 사람은 72세까지 건강하다가 11년을 앓습니다. 다른 사람은 78세까지 건강하다가 5년을 앓습니다. 수명은 같지만 아픈 기간이 두 배 넘게 차이 납니다.

노후 설계의 진짜 목표는 수명을 늘리는 게 아니라 이 구간을 줄이는 것입니다.

그 10년에 무슨 일이 벌어지나

이 구간은 추상적인 게 아닙니다. 아주 구체적인 사건들로 채워집니다.

  • 낙상 한 번. 고관절이 부러지면 그전의 생활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근육 감소. 앉았다 일어나는 게 힘들어지면 활동이 줄고, 활동이 줄면 근육이 더 빠집니다.
  • 인지 저하. 혼자 약을 챙기지 못하는 순간부터 돌봄이 필요해집니다.
  • 삼킴 기능 저하. 사레가 잦아지면 폐렴 위험이 올라갑니다. 노년기 사망 원인에서 폐렴이 상위에 있는 이유입니다.

이 넷은 서로 물려 있습니다. 하나가 무너지면 나머지가 빠르게 따라옵니다. 반대로 말하면, 하나만 지켜도 연쇄가 늦어집니다.

그래서 무엇을 지킬 것인가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여든에 모든 걸 다 지킬 수는 없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본 기준은 단순합니다. 혼자 화장실에 갈 수 있는가. 이 하나가 유지되면 대부분의 생활이 유지되고, 이게 무너지면 돌봄의 성격 자체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근력과 균형이 다른 무엇보다 먼저입니다. 혈압 수치보다, 콜레스테롤보다 먼저입니다. 여든의 부모님에게 식단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것보다 매일 20분 걷게 하는 것이 훨씬 큰 차이를 만듭니다.

엔딩플래너의 관점

부모님께 “오래 사세요”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건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대신 “어떤 상태로 지내고 싶으세요”를 물어보세요. 혼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지, 손주 결혼식에 걸어 들어가고 싶은지, 집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은지. 목표가 구체적이어야 오늘 무엇을 할지가 정해집니다. 막연한 장수는 설계가 불가능하지만, 구체적인 상태는 설계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할 수 있는 것

  1. 부모님이 의자에서 손을 안 짚고 일어나실 수 있는지 한 번 보세요. 못 하시면 근력 관리가 지금 가장 급한 항목입니다.
  2. 집 안에서 부모님이 밤에 화장실 가는 동선을 걸어 보세요. 문턱, 어두운 구간, 잡을 것 없는 벽 — 낙상은 대부분 이 동선에서 납니다.
  3. 다음 통화에서 “어떤 상태로 지내고 싶으세요”를 물어보세요. 대답을 적어 두세요. 나중에 모든 결정의 기준이 됩니다.

이 글은 준비 중인 책 『엔딩플래너』의 초고입니다. 새 글과 출간 소식을 먼저 받아보시려면 이메일을 남겨 주세요. 주 2회, 화·금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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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병 · 케어닥 대표이사

2018년 케어닥을 창업해 요양 돌봄의 전 구간을 만들어 왔습니다. 현장에서 본 ‘그날’을 미리 설계하는 글을 씁니다. 소개 → · 엔딩플래너 서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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