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재병

부모님이 쓰러지면 벌어지는 일의 순서

부모님이 쓰러진 다음 벌어지는 일에는 정해진 순서가 있습니다. 여섯 단계를 미리 알면 매번 응급으로 결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보호자들이 거의 똑같은 말을 합니다. “이게 이렇게 되는 건 줄 몰랐어요.”

몰랐던 게 아닙니다. 아무도 순서를 알려 주지 않았을 뿐입니다.

부모님이 쓰러진 다음에 벌어지는 일에는 놀랄 만큼 일정한 순서가 있습니다. 가족마다 속도만 다를 뿐, 거치는 단계는 거의 같습니다. 이 순서를 알면 매번 응급으로 결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1단계 · 입원

시작은 대개 병원입니다. 낙상, 뇌졸중, 폐렴. 이때 가족은 “치료하면 낫는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급성기 치료는 끝납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병원은 “이제 퇴원하셔도 됩니다”라고 하는데, 집은 그 상태의 부모님을 받을 준비가 안 돼 있습니다.

2단계 · 돌봄 공백

가장 위험한 구간입니다. 치료는 끝났는데 혼자 생활은 안 되는 상태. 이때 가족은 임시방편으로 버팁니다. 딸이 휴직하고, 며느리가 오가고, 아버지 혼자 두고 걱정합니다.

이 공백은 보통 몇 주에서 몇 달 갑니다. 그리고 이 기간에 재입원이 가장 많이 생깁니다. 준비 없이 집으로 돌아간 어르신이 다시 넘어지거나 폐렴이 오기 때문입니다.

3단계 · 인지 저하

신체 기능이 떨어지면 인지 기능도 같이 떨어집니다. “어머니가 요즘 이상해요”라는 말이 나오는 시점입니다.

가족은 이걸 노화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진단을 받으면 확정되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평균 1~2년을 흘려보냅니다. 그사이 대응할 수 있었던 시간이 사라집니다.

4단계 · 시설 결정

집에서 감당이 안 되는 시점이 옵니다. 이때 처음으로 요양원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대부분 여기서 두 번 놀랍니다. 첫째, 장기요양등급이 없으면 비용이 전액 자부담이라는 것. 둘째, 등급이 나와도 원하는 시설에 바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 좋은 시설은 대기가 있습니다.

등급 신청부터 결과까지 보통 30일입니다. 이 30일을 4단계에 와서 시작하면 늦습니다. 2단계에서 걸어 놨어야 합니다.

5단계 · 연명의료 결정

상태가 더 나빠지면 결국 이 질문 앞에 섭니다. 인공호흡기를 달 것인가. 콧줄을 넣을 것인가. 중환자실로 옮길 것인가.

이 결정을 부모님 본인이 의사를 밝힐 수 없는 상태에서 자녀가 내리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형제 의견이 갈리면 여기서 관계가 상합니다. 그리고 이 순간의 선택은 평생 남습니다.

6단계 · 장례와 상속

마지막 단계입니다. 장례는 3일 안에 끝나지만, 상속은 몇 년을 갑니다.

미리 정리해 둔 게 없으면 이 단계는 형제 사이의 마지막 시험이 됩니다.

엔딩플래너의 관점

여섯 단계 중 어디서 준비를 시작하느냐가 전부를 가릅니다. 대부분의 가족은 4단계에서 시작합니다. 저는 2단계에서, 가능하면 1단계에서 시작하라고 말합니다. 1단계에서 장기요양등급을 신청해 두면 2단계의 공백이 짧아지고, 2단계에서 형제 회의를 해 두면 5단계에서 다투지 않습니다. 한 단계 앞서 준비하는 것만으로 그다음 단계의 난이도가 통째로 내려갑니다.

오늘 할 수 있는 것

  1. 지금 부모님이 몇 단계에 계신지 표시해 보세요. 0단계(아직 건강)여도 좋습니다. 위치를 아는 것이 시작입니다.
  2. 만 65세가 넘으셨다면 장기요양등급은 병명이 없어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결과가 나오는 데 30일이 걸린다는 것만 기억하세요.
  3. 다음 명절에 형제가 모이면 5분만 쓰세요. “아버지가 못 알아보시게 되면 누가 결정할까.” 답을 안 내도 됩니다. 질문을 공유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 글은 준비 중인 책 『엔딩플래너』의 초고입니다. 새 글과 출간 소식을 먼저 받아보시려면 이메일을 남겨 주세요. 주 2회, 화·금 아침.

케어닥 엔딩플래너 서비스가 궁금하시면 서비스 안내를, 글쓴이가 궁금하시면 박재병 소개를 봐 주세요.

박재병 · 케어닥 대표이사

2018년 케어닥을 창업해 요양 돌봄의 전 구간을 만들어 왔습니다. 현장에서 본 ‘그날’을 미리 설계하는 글을 씁니다. 소개 → · 엔딩플래너 서비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