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하다 보면 보호자들이 거의 똑같은 말을 합니다. “이게 이렇게 되는 건 줄 몰랐어요.”
몰랐던 게 아닙니다. 아무도 순서를 알려 주지 않았을 뿐입니다.
부모님이 쓰러진 다음에 벌어지는 일에는 놀랄 만큼 일정한 순서가 있습니다. 가족마다 속도만 다를 뿐, 거치는 단계는 거의 같습니다. 이 순서를 알면 매번 응급으로 결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1단계 · 입원
시작은 대개 병원입니다. 낙상, 뇌졸중, 폐렴. 이때 가족은 “치료하면 낫는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급성기 치료는 끝납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병원은 “이제 퇴원하셔도 됩니다”라고 하는데, 집은 그 상태의 부모님을 받을 준비가 안 돼 있습니다.
2단계 · 돌봄 공백
가장 위험한 구간입니다. 치료는 끝났는데 혼자 생활은 안 되는 상태. 이때 가족은 임시방편으로 버팁니다. 딸이 휴직하고, 며느리가 오가고, 아버지 혼자 두고 걱정합니다.
이 공백은 보통 몇 주에서 몇 달 갑니다. 그리고 이 기간에 재입원이 가장 많이 생깁니다. 준비 없이 집으로 돌아간 어르신이 다시 넘어지거나 폐렴이 오기 때문입니다.
3단계 · 인지 저하
신체 기능이 떨어지면 인지 기능도 같이 떨어집니다. “어머니가 요즘 이상해요”라는 말이 나오는 시점입니다.
가족은 이걸 노화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진단을 받으면 확정되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평균 1~2년을 흘려보냅니다. 그사이 대응할 수 있었던 시간이 사라집니다.
4단계 · 시설 결정
집에서 감당이 안 되는 시점이 옵니다. 이때 처음으로 요양원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대부분 여기서 두 번 놀랍니다. 첫째, 장기요양등급이 없으면 비용이 전액 자부담이라는 것. 둘째, 등급이 나와도 원하는 시설에 바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 좋은 시설은 대기가 있습니다.
등급 신청부터 결과까지 보통 30일입니다. 이 30일을 4단계에 와서 시작하면 늦습니다. 2단계에서 걸어 놨어야 합니다.
5단계 · 연명의료 결정
상태가 더 나빠지면 결국 이 질문 앞에 섭니다. 인공호흡기를 달 것인가. 콧줄을 넣을 것인가. 중환자실로 옮길 것인가.
이 결정을 부모님 본인이 의사를 밝힐 수 없는 상태에서 자녀가 내리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형제 의견이 갈리면 여기서 관계가 상합니다. 그리고 이 순간의 선택은 평생 남습니다.
6단계 · 장례와 상속
마지막 단계입니다. 장례는 3일 안에 끝나지만, 상속은 몇 년을 갑니다.
미리 정리해 둔 게 없으면 이 단계는 형제 사이의 마지막 시험이 됩니다.
엔딩플래너의 관점
여섯 단계 중 어디서 준비를 시작하느냐가 전부를 가릅니다. 대부분의 가족은 4단계에서 시작합니다. 저는 2단계에서, 가능하면 1단계에서 시작하라고 말합니다. 1단계에서 장기요양등급을 신청해 두면 2단계의 공백이 짧아지고, 2단계에서 형제 회의를 해 두면 5단계에서 다투지 않습니다. 한 단계 앞서 준비하는 것만으로 그다음 단계의 난이도가 통째로 내려갑니다.
오늘 할 수 있는 것
- 지금 부모님이 몇 단계에 계신지 표시해 보세요. 0단계(아직 건강)여도 좋습니다. 위치를 아는 것이 시작입니다.
- 만 65세가 넘으셨다면 장기요양등급은 병명이 없어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결과가 나오는 데 30일이 걸린다는 것만 기억하세요.
- 다음 명절에 형제가 모이면 5분만 쓰세요. “아버지가 못 알아보시게 되면 누가 결정할까.” 답을 안 내도 됩니다. 질문을 공유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 글은 준비 중인 책 『엔딩플래너』의 초고입니다. 새 글과 출간 소식을 먼저 받아보시려면 이메일을 남겨 주세요. 주 2회, 화·금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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