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재병

준비하지 않은 죽음은 남은 사람의 빚이 된다

준비 없이 떠난 죽음은 남은 사람에게 결정과 서류와 다툼으로 돌아옵니다. 상속재산분할 사건 3,612건, 그중 84%가 1억 원 이하. 빚은 돈이 아니라 남이 대신 내려야 하는 결정입니다.


낙엽 쌓인 가을 공원의 빈 벤치 두 개

장례가 끝나고 사흘째 되는 날, 남은 가족에게 도착하는 것이 있습니다. 조문객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아버지 휴대폰 비밀번호가 뭐였지. 보험은 어디 들어 두셨지. 통장은 몇 개지. 선산에 모실지, 봉안당으로 갈지. 이 집은 어떻게 하지.

질문마다 답할 사람은 이미 없습니다. 그래서 남은 사람들이 대신 답합니다. 틀릴까 봐 두려운 채로, 서로 다른 답을 들고서. 저는 이것을 빚이라고 부릅니다. 돌아가신 분이 남긴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생전에 내리지 않은 결정이 남은 사람에게 이자까지 붙어 청구되는 것입니다.

저는 농가의 늦둥이 막내로 누나 넷 사이에서 자랐고, 2018년 케어닥을 창업한 뒤 요양 현장에서 수천 가족을 봤습니다. 그 가족들이 가장 힘들어한 순간은 돌아가신 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다음에 결정해야 할 것이 한꺼번에 밀려올 때였습니다.

이 글은 그 빚의 정체가 무엇이고, 왜 늘고 있으며, 어떻게 하면 남기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한 글입니다.

빚의 정체는 돈이 아니라 ‘대신 내리는 결정’입니다

준비하지 않은 죽음이 남기는 것은 세 종류입니다. 첫째는 의료의 결정입니다. 연명의료를 할지 말지를 본인이 정해 두지 않으면 가족이 정합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쓴 사람은 320만 명을 넘었지만(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2026년), 제도 시행 뒤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사례를 누적으로 보면 본인 의사에 따른 경우가 43%, 가족 의사에 따른 경우가 57%였습니다(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2025년 10월 기준). 아직 절반 넘는 집에서 가족이 대신 정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장례의 결정입니다. 화장인지 매장인지, 어디에 모실지, 누구에게 알릴지. 셋째는 재산의 결정입니다. 무엇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누구에게 어떻게 갈지. 이 세 가지는 모두 본인이 가장 잘 아는 답입니다. 그런데 본인만 말할 수 있는 답을 말하지 않고 가면, 가장 모르는 사람들이 가장 지쳐 있을 때 답안을 써 내야 합니다. 그것이 빚입니다.

준비하지 않은 죽음이 남기는 세 가지 결정 도식. 1 의료의 결정(연명의료를 할지 말지), 2 장례의 결정(화장인지 매장인지, 어디에 모실지, 누구에게 알릴지), 3 재산의 결정(무엇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누구에게 어떻게 갈지)

숫자로 보면 빚은 늘고 있습니다

2025년 한 해 사망자는 362,968명으로 전년보다 1.2% 늘었고, 그중 80세 이상이 54.7%였습니다(국가데이터처, 2025년 사망원인통계, 2026년 9월). 죽음은 더 늦게, 더 많이 오고 있습니다. 준비할 시간은 길어졌는데 준비는 그만큼 늘지 않았습니다.

법원에 접수된 상속재산분할 사건은 2014년 771건에서 2025년 3,612건으로 늘었습니다(대법원, 2026 사법연감). 11년 사이 약 4.7배입니다. 더 눈여겨볼 숫자는 따로 있습니다. 2025년 사건 가운데 재산 1억 원 이하가 3,051건으로 84%를 넘습니다(대법원 자료, 머니투데이 2026년 9월 보도). 부자들의 다툼이 아닙니다. 1억 원도 안 되는 재산을 두고 형제가 법정에 서는 것이 평범한 집의 현실입니다.

구분2014년2024년2025년
상속재산분할 사건(전국 법원 접수)771건3,075건3,612건(역대 최다)
그중 재산 1억 원 이하자료 없음2,604건3,051건(84%)
성년후견 관련 사건자료 없음9,421건10,461건

성년후견 사건이 한 해 1만 건을 넘은 것도 같은 그림입니다(대법원, 2026 사법연감). 판단력이 흐려지기 전에 본인이 정해 두지 않으면, 법원이 대신 정합니다.

상속재산분할 사건 수 막대그래프. 2014년 771건, 2024년 3,075건, 2025년 3,612건으로 11년 사이 약 4.7배 증가. 2025년 사건의 84%(3,051건)는 재산 1억 원 이하

빚에는 이자가 붙습니다

이 빚의 이자는 시간입니다. 상속을 포기하거나 한정승인을 하려면 상속이 시작된 것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해야 합니다(민법 제1019조). 상속세 신고는 상속개시일이 속한 달의 말일부터 6개월입니다. 장례 치르고 49재 지내면 절반이 갑니다. 그 안에 재산을 다 찾아내고, 빚을 다 확인하고, 형제가 합의하고, 서류를 내야 합니다.

기한을 넘기면 가산세가 붙고, 몰랐던 빚이 있으면 떠안고, 합의가 안 되면 소송으로 갑니다. 소송이 이어지는 동안 형제는 명절에 모이지 않습니다.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이자가 가장 큽니다.

가장 약한 사람에게 청구됩니다

이 빚은 공평하게 나뉘지 않습니다. 돌아가신 분 곁에 가장 오래 있었던 사람, 통장을 관리했던 사람, 병원에 동행했던 사람에게 먼저 갑니다. 그 사람은 가장 많이 알기 때문에 가장 많이 설명해야 하고, 가장 많이 썼기 때문에 가장 많이 의심받습니다. 끝까지 곁을 지킨 사람이 장례 뒤에 “그 돈 어디 썼느냐”는 질문을 받는 장면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준비는 그래서 효도의 문제가 아니라 공정의 문제입니다. 떠나는 사람이 결정을 남겨 두면, 남은 사람 중 누구도 혼자 책임지지 않아도 됩니다.

준비는 유언장이 아니라 말해 두는 것입니다

준비라고 하면 유언장이나 상속 설계를 떠올리지만, 제가 현장에서 본 가장 효과 있는 준비는 훨씬 단순했습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한 장에 적어 두는 것. 연명의료에 대한 생각을 가족 앞에서 한 번 말해 두는 것. 장례를 어떻게 치렀으면 좋겠는지 한 줄 남기는 것. 이 세 가지만 있어도 남은 사람이 대신 내려야 할 결정의 절반이 사라집니다.

앞서 ‘엔딩노트 한 권으로 정리하는 12가지’에서 적은 항목들이 그 한 장의 내용입니다. 유언장은 그다음입니다. 유언장이 왜 대부분 무효가 되는지는 뒤에 따로 쓰겠습니다.

엔딩플래너의 관점

저는 죽음 준비를 ‘남은 사람에게 빚을 남기지 않는 일’로 정의합니다. 좋은 죽음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쁜 죽음은 분명합니다. 내가 내렸어야 할 결정을 남이 대신 내리게 하는 죽음입니다.

케어닥 우리가족 엔딩플래너가 하는 일의 핵심은 그 결정을 생전에, 본인의 입으로, 가족이 듣는 자리에서 하게 돕는 것입니다. 서류는 그 대화의 기록일 뿐입니다. 오늘 부모님과 나누는 어색한 대화 10분이 몇 년 뒤 형제가 법정에서 보낼 시간을 대신합니다.

오늘 할 수 있는 것

  1. 부모님 명의의 통장·보험·부동산이 ‘어디에 있는지’만 한 장에 적어 보세요. 금액은 몰라도 됩니다. 어디에 있는지가 먼저입니다.
  2. 부모님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셨는지, 썼다면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등록되어 어느 병원에서도 조회되는지 확인하세요. 쓴 사실을 가족이 아는 것까지가 준비입니다.
  3. 이번 주말 통화에서 한 문장만 물어보세요. “아버지는 나중에 어디에 모셔 드리면 좋겠어요?” 대답이 없어도, 물었다는 사실이 다음 대화를 쉽게 만듭니다.

이 글은 준비 중인 책 『엔딩플래너』의 초고입니다. 새 글과 출간 소식을 먼저 받아보시려면 이메일을 남겨 주세요. 주 2회, 화·금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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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사진: CC0 1.0 · Openverse(rawpixel)

박재병 · 케어닥 대표이사

2018년 케어닥을 창업해 요양 돌봄의 전 구간을 만들어 왔습니다. 현장에서 본 ‘그날’을 미리 설계하는 글을 씁니다. 소개 → · 우리가족 엔딩플래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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